나는 어떤 차가운 공간에서 눈을 떴다.
눈을 감기 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.
아니다. 기억나지 않는게 아니다. 기억을 떠올릴 소재를 찾아낼 수 없었다.
아마 사람이 자고 일어나서 자기 전 일을 기억할 수 있는것은 현재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일 것이다.
그런데 눈을 뜨면 의례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.
오감이 없었다.
눈을 떠도 보이지 않았고,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았다.
마치 우주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진 느낌이었다.
나는 당황해서 내 몸의 촉각들을 곤두세워 보았지만 이 마저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.
정말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했다.
이대로 있을수는 없다는 판단 하에, (머리속으로) 한숨을 쉰 뒤에 팔다리를 움직여보기 시작했다.
움직인다.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.
문의 녹슨 이음쇠처럼 관절이 삐걱대며 움직였다. 이럴리가 없을텐데...
또, 최대한도로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. 무엇인가가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.
그렇게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신경쓰이는 것이 하나 생겼다.
머리맡의 어딘가에서 미칠듯하게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것이었다.
주로 면상 부분이 맞바람을 맞게 되어 있어서 얼굴이 얼얼했다.
그리고 목 뒤의 어딘가에서는 현재 상황과는 매우 이질적인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.
다음은 허리를 움직일 차례였다.
허리가 움직였다.
상체가 들어 올려졌다.
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.
"이.. 이건...!"
그렇다. 나는...
군대에서 혹한기 훈련 중이었다...-_-;
얼마나 구석진 곳인지 그 흔하디 흔한 가로등 불빛하나 없었고,
날이 흐려 달빛과 별빛도 보이지 않았다.
그러니 눈을 떠도 앞이 안 보일 수밖에...
한겨울이라 벌레들도 다 얼어 죽었는지 조용해서
내가 움직이는 부스럭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.
몸이 얼어서 그런지 촉각은 매우 둔해져 있었고, 관절이 얼어서 삐걱댔다.
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것도 당연했다.
왜냐면 너무 껴 입어서 그렇다...-_-;
런닝 - 내복 - 전투복 - 깔깔이 - 야상 - 스키파카 상의를 여섯겹을 입었으니 당연히 팔이 마음대로 움직일 리 없었고,
속옷 - 내복 - 깔바지 - 전투복 하의도 네겹이나 입었으니 다리도 마음대로 안 움직였다.
거기에 침낭을 두르고 있으니 더 안 움직였다. 흡사 미라가 된 듯도 했다.
머리맡의 바람구멍은 공포의 침낭 얼굴구멍으로 통풍이 매우 잘(?) 되기에 고생했다.
이게 추워서 여며놓으면 바람이 황소바람 버전으로 바뀌기 때문에 더 추워지는 신기한 구멍이다.
그리고 그 날...
뒷 목에 목토시로 고정시켜 놓은 핫팩때문에 목 뒤에 화상 입었었다...
목 뒤에 핫팩두고 자면 따뜻해서 좋다는 사람 뉘기야~!
홍일이, 니 이런 글 자꾸 쓰고 있다만(지난번 편의점 편에 이어서지? 아마)
이런 글 쓰고만 있는 건 아니겠지?
노래는 좋구나.